■ 성황리에 끝난 국립중앙박물관 <대고려 특별전>, 그 성공 비결은?
국립중앙박물관 전경
국립중앙박물관에서 2018년 12월 4일부터 올해 3월 3일까지 열린 <대고려 918~2018, 그 찬란한 도전, 이하 대고려 특별전> 전시가 석 달간의 대장정을 마치고 성황리에 끝을 맺었다. 박물관 측이 밝혔듯이, 이번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대고려 특별전>은 2017년부터 지방의 국립박물관들이 개최하기 시작한 소규모 고려 관련 전시의 집대성이자 백미라고 할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중정에서 바라본 남산. 거대한 풍경화를 연상시킨다.
박물관 측은 전시 개막 당시 “전시품의 규모와 질적인 면에서 광복 이후 고려 미술을 종합적으로 고찰하는 대규모 특별전”이라고 밝혔는데, 아마도 광복 이후 고려 미술을 다룬 전시로는 감히 최고가 아니었나 생각했다.
기획전시실에서 열린 <대고려 918~2018, 그 찬란한 도전> 전시장 입구
전시가 끝나기 얼마 전인 2월 말, 오전에 국립중앙박물관으로 향했다. 전시를 본 지인들이 이 전시는 “꼭 봐야 한다”거나 “강추!”라고 이야기했는데, 시간 내기가 쉽지 않았다. 마음이 급하다. 게다가 전시 막바지 즈음의 전시장은 관람객들이 많을 터, 조금이라도 일찍 가는 게 낫다. 아뿔싸, 이촌역에서 박물관으로 향한 지하보도는 이미 사람들이 꽤 차 있다.
<대고려, 그 찬란한 도전>을 보러 박물관을 찾은 관람객들. 국립중앙박물관 사진 제공
전시가 열리는 기획전시장에 들어서니, 역시나 이미 관람객으로 가득하다. 사람들 틈에 껴서 찬찬히 전시장을 둘러본다. 전시는 네 가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918년 태조 왕건이 세운 고려의 수도 개경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수도 개경과 왕실의 미술’ 섹션에서는 청자나 은제 금도구 주전자, 유리 공예품 등 무역이 활발했던 개경을 중심으로 한 왕실 미술을 살펴본다.
<희랑대사> 고려 10세기 보물 999호, 해인사 소장
<은제 금도금 주자> 고려 12세기, 보스턴박물관 소장
<청화 칠보무늬 향로> 높이 15.3cm 고려 12세기 국보 제95호.
수정과 형석으로 제작된 <개성 부근 출토 다양한 물건> 동물 모양의 조형물이 너무 귀여웠다. 개인적으로 매우 마음에 들었던 작품들이었다.
‘사찰로 가는 길’ 섹션에서는 1100년 전 개국 이후 불교문화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다양한 문화적 성취를 둘러본다. 해인사가 소장하고 있는, 1098년 제작된 가장 오래된 화엄경 목판인 <대방광불화엄경 수청연간판>을 비롯해 불상이나 불화, 관음도, 경전을 담은 함 등 동북아시아 불교 의례의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단서들을 만나볼 수 있다.
‘사찰로 가는 길’ 입구. 숯으로 된 조형물이 장식되어 있었다.
다양한 고려 불경들
고려 시대의 대표적인 회화인 <수월관음도>와 다양한 회화가 세계 각지에서 모여 관람객들의 큰 관심을 끌었다.
‘차가 있는 공간, 다점(茶店)’ 섹션은 독특하다. 이 섹션에 들어서면 실제로 차 향기가 난다. 당시 고려인들에게 인기가 있던, 현재 우리의 카페 같은 다점을 소개하고 있다. 마지막 ‘고려의 찬란한 기술과 디자인’ 섹션에서는 다양한 공예품과 금속 활자를 통해 당시 고려가 지니고 있었던 새로운 아이디어와 높은 기술력을 보여주었다.
‘다점, 차가 있는 공간’ 섹션의 전시품들
‘고려의 찬란한 기술과 디자인’ 섹션의 전시 공간
폐막을 얼마 남기지 않고 특별전을 찾았을 때 관람객이 전시장을 꽉 채우고 있는 상황을 보고 있자니, 왜 이 전시가 성공한 전시가 될 수밖에 없는지를 알 수 있을 듯하다. 결국, 좋은 전시란 이렇게 드러난다. 입소문으로 전시장에 관람객들이 꽉 찬 그런 전시로 말이다. 박물관 측은 전시 기간인 88일 동안 하루 평균 1, 956명, 총 172,101명이 박물관을 찾았다고 밝혔다. 역대 한국문화재 주제로 개최한 전시 중 하루 평균 최다 관람객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많은 관람객이 다녀간 <대고려 특별전>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전시장의 마지막에는 고려의 금속활자 ‘복’이 전시되어 고려인들의 독창적이고 우수한 문화를 알렸다.
이번 전시는 이른바 ‘스펙’부터 화려했다. ‘고려’라는 나라를 총체적으로 둘러보기 위해, 그리고 고려 개국 1100년을 기념하기 위해, 회화, 조각, 공예, 목판 등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고려 관련 유물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국보 19건과 보물 33건을 포함해 총 450여 점의 문화재가 전시를 위해 모였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뿐만 아니라 해인사, 삼성미술관 리움, 호림박물관, 간송미술문화재단 등 국내 34개 기관이 작품을 빌려주었고, 전시품 중에는 영국, 미국, 일본, 이탈리아 등 4개 나라의 11개 기관이 소장하고 있는 고려 주요 문화재도 포함되었다. 이번 전시를 위해 작품을 빌려준 여러 나라와 기관의 수도 놀라웠지만, 이렇게 대여해 온 문화재의 수준 또한 놀라웠다.
이번 전시에서 최고의 인기 전시 작품으로 꼽힌 <희랑대사> 고려 10세기, 보물 999호, 해인사 소장, 국립중앙박물관 사진 제공
해인사에서 처음으로 진본이 대여되어 전시된 <희랑대사상>은 10세기 중반 조각 가운데에서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작품으로, 고려 시대의 유일한 승려 초상 조각이다. 희랑 대사는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의 스승이었다. 이 작품은 사실 진품을 볼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는 문화재다. 소장처인 해인사에서도 보존 문제로 전시 때는 복제품으로 공개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귀한 실견(實見)의 기회뿐 아니라, 어둡고 정적인 공간에 좌대와 함께 전시된 <희랑대사>는 전시 연출 면에서도 빈틈이 없었다는 생각이다.
보스턴박물관 소장의 <은제 금도금 주자와 받침>은 2위에 뽑혔다. 국립중앙박물관 사진 제공
미국 보스턴박물관에서 대여해 온 <은제 금도금 주자와 받침>이나 간송미술관 소장의 <금동삼존불감> 등 수준 높은 문화재와 함께, 이탈리아 로마예술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고려 <아미타여래도>나 영국박물관의 <둔황 불화>는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귀한 문화재들이었다. 이들은 전시 기간 최고 인기 작품들을 꼽는 설문 조사에서도 상위권을 차지할 정도로 큰 관심을 끌었다.
<부처와 보살을 모신 작은 집(금동삼존불감)> 고려 11세기, 국보 제73호, 간송미술문화재단, 국립중앙박물관 사진 제공
이와 함께 미술로 역사를 재구성하고, 최신 자료와 연구 성과들이 총체적으로 종합해 고려 문화에 대해 새로이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도 성공 비결 중 하나였다. 외부의 침략과 고난 극복의 역사뿐만이 아닌 동아시아 국가들과의 상호 교류 양상을 살펴봄으로써, 고려의 개방성과 국제성을 탐구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시각, 청각, 후각을 통해 즐길 수 있는 고려의 차 문화를 조명한 것도 신선한 시도였다.
<경전을 담은 함(나전 국화넝쿨무늬 경함)> 고려 13세기, 영국박물관 소장, 국립중앙박물관 사진 제공
고려라는 나라를 살펴보기 위해 관객 친화적으로 흥미롭게 전시 공간을 꾸미고, 상당한 노력을 통해 걸작이라 부를 수 있는 문화재를 한자리에서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심도 있는 연구 결과와 함께 전시에 대한 다양하고 새로운 시도를 선보였다는 점이 이번 전시가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비결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은제 금도금 표주박 모양 병> 고려 12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국립중앙박물관 사진 제공
지난해는 918년 개국해 1392년 멸망한 고려가 건국한 지 1100년이 되는 해였다. 1천 년이 되던 1918년이 일제강점기 상황이었기에, 1100년이 되었던 지난해 이런 전시를 열 수 있었다는 점은 의미가 컸다. 여기에 25여 년 전 호암갤러리에서 열린 <대고려국보전> 이후 이렇게 큰 고려 관련 전시가 없었다는 점, 그리고 이 정도 규모의 전시를 또 언제 열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다는 점에 <대고려 918~2018, 그 찬란한 도전>의 또 다른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이러한 전시의 의미 또한 성공의 기폭제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이러한 커다란 의미와 함께, 1100년 전 세워진 고려, 475년간 지속된 왕국의 찬란함이 이번 전시를 통해 오롯이 빛났다.
(혹시 이번 전시를 놓쳐서 아쉬운 사람들은 국립중앙박물관의 홈페이지나 SNS에 들어가면 VR 전시 보기가 가능하니 약간의 아쉬움을 달랠 수 있을 듯싶다).
국립중앙박물관의 홈페이지나 SNS에 들어가면 VR 전시 보기가 가능하다. ‘VR로 보는 <대고려, 그 찬란한 도전>의 한 장면. 국립중앙박물관 사진 제공
미술 저널리스트 류동현은 서울대 인문대학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했다. 10여 년간 미술전문지 <아트> (현 <아트인컬쳐>), <월간미술> 기자로 일했고, ‘문화역서울 284’ 전시 큐레이터를 했다. <인디아나 존스와 고고학>, <만지작만지작 DSLR 카메라로 사진찍기>, <매지컬 미스터리 투어>(공저), <서울 미술산책 가이드>(공저), <한국의 근대건축>(공저), <런던-기억>, <미술이 온다> 등의 저서와 공역서 <고고학의 모든 것>이 있다. 전시 <은밀하고 황홀하게展>과 <페스티벌284:美親狂場>, <프로젝트284: 시간여행자의 시계>를 기획했고, 개인전 <미술기자 Y씨의 뽕빨 111번展>을 열었다. 현재 미술 저널리스트 겸 전시기획자, 페도라프레스 편집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메일 fedorapress@naver.com
<류동현 미술 저널리스트>